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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감정을 옮겨준 사람들 안에 네가 있었다. 난 그 공간을 '우리'와 '너희'로 불렀고, 처음으로 알게 된 소속감이란 것은 편안하고도 불안했다. 이 공간이 무너진다면 나는 그 감각을 멍청하게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 이유일까 싶다. 사람들 속에서 벗어나 혼자 노래하던 모습만 알고 있던 나에게 있어 같은 곳에 서서 사람들 속에 있는 네 모습이 신선했을지도 몰랐다.

    무대 위의 너는 언제나 즐거운 듯이 노래했고, 함께 서있는 녀석들도 즐거운 듯 보였고, 그 즐거움이 나한테 왔을 때의 감각이 새로웠다. 타인의 감정이 나의 것이 되는 감정은 처음이라, 혼자 있을 때로 돌아가고 싶어지지 않을 정도의 자극이었다. 궁금한 것을 한 자락 더 얹어보자면, 마찬가지였던 너의 감정이, 즐거움이, 내가 받은 것들 안에 들어있는지. 이유도 나에게 묻지 않은 채 막연히 그게 궁금했다.

    첫번째 친구에, 든든한 동료인 너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 납득하며 네가 '너희' 속에서 주는 것을 받아쥐었다. 네가 가진 즐거움이 이것과 완전히 같은지 나는 알 수 없었지만, 흉내 밖에 낼 줄 모르는 감정이라도 그것이 닮았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필요로 하여, 그 필요에 응하여 만들어진 공간 속에서, 내가 가장 편안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너희'에게 둘러싸여 한가운데 선 내가 누굴 앞으로 두었는지 자각하기란 어려웠다. 제각기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퍼지며 이어진 끈만으로 하나라 칭하는 도형 안에서 앞이라는 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서 그저 이 안에 있음에 방심하고 안심해 너의 존재가 이 안에서, 내 안에 어떻게 자리했는지는 무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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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존재의 무지를 깨닫는 것은, 그것이 정작 멀어져야 알아차려 뒤늦은 후회를 만든다. 그래서 난 되도록 많은 것을 알고자 했고, 모르는 것을 없애며 후회를 만들지 않으려 했다. 눈앞에 있는 답을 답이라 생각 못한 채 지나치는 것만큼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결국,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돌아선 짙은 그림자에 탄식을 토하고, 허공에 손을 내젓고, 끊어진 실을 억지로 그러쥔 채 내 손에 얽었다. 소용없는 짓임을 깨닫고 입안을 깨물었을 때는 이미 내 공간은 차가웠고, 시끄러웠던 발자취도 들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

    네가 자초한 일이야.

    그런 질책이 울려퍼져 포기해야 하는 건지 고민하며 멀어지는 뒷모습들을 돌아봤다. 다들 저마다의 거리감을 표하며 뒤돌아서고 있다는 걸, 공감력 없는 나조차 알 수 있었다. 그렇겠지, 결국 흘러가게 될 거니까. 흘려보낼 시나리오의 일부였을 뿐이었던 거라고, 어쩔 수 없다며 무슨 표정조차 짓지 못한 채 고개를 들었을 때,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내 눈은 너에게 향해 있었고, 웃음 짓지 않은 채 돌아서는 모습을 담은 순간 무언가 숨을 막아버리는 듯했다.

    떠난다면 어쩔 수 없지.

    바라는 걸 다 해줄 수 밖에 없어.

    너희가 바라는 게 멀어지는 거라면 난…….

    외면하고 납득하기 위해 씹어삼켰던 문장들이 찢어지며 서두와 결론을 바꿨다. 그런 체념이나 납득이랑은 다른 감각이 숨을 막고, 폐를 찔러대는 듯이 아팠다. 타고 있던 배가 뒤집힌 듯 요란스럽게 변화를 알렸지만, 나는 그것을 무슨 '감정'이라 정의할 수 없었다. 복잡하게 굳어있는 네 얼굴을 보면, 그 감정이 옮겨온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네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뒤돌아섰는지 단정하지 못한 내가 느끼고 있는 감각이 너에게 왔을 리 없었다. 너에게 받지 않았음에도 너로 인해 생겨났고, 정의하지 못한 그것을 삼켜내고 건넨 말이라고는 사과였다. 내가 가진 것의 이름은 몰라도 네가 가진 것의 이름은 알 것 같아서, 그걸로 인해 네가 떠날 것 같다는 판단이 네가 지어보인 표정에서 내려졌다.

    그런 어둑한 대화를 밝게 포장해 풀어가는 중에도 너는 어떻게든 웃어보이고 있었다.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했지만, 네가 억지로 짓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 생각을 그대로 뱉어 물었다. 처음으로 곧이그대로 보여지는 것을 의심한 걸지도 모르지만, 웃고 싶어 웃는다는 말에, 웃으면 다들 좋아하니 웃는다는 말에, 나는 짧게 침묵을 삼켜야했다. 네 웃음의 종류는 너무도 많아서, 나는 정작 그 중 하나도 제대로 내 것으로 하지 못한 채 타에 의존하건만, 너는 타의 웃음까지 찾고 있었다.

 

    웃고 싶지 않을 때도, 너는 타를 위해 웃어주는 걸까?

    괴로울 때라도?

    지어낸 웃음으로 덮어가린다면, 보이는 것밖에는 믿을 수 없는 나는 그 웃음에 응답해야 할 터였다. 그리고 네가 가진 진짜 감정은 영영 알지 못한 채 바보 같은 박수만 치며 멍청한 맞장구나 내뱉을지도 몰랐다. 어두운 일을 맞닿트린 직후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오만한 말을 리더라는 옷을 입혀 건넸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웃게 될 일을 만들어주겠다고.

    우스울 말이었다. 그 말만으로 우스워 배를 잡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즐겁다는 감정조차 타의 것을 훔쳐온 주제에 그런 감성어린 말을 했다. 그저 네가 가진 것을 모르게 되는 것이 두려워, 네 감정이 가려지는 것이 두려워 그러나 했다. 나는 내 감정을 모르고, 오히려 그것이 존재하긴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무지한 녀석이니까.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는 감정들의 사전적 의미 외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녀석이니까. 이유가 되는 감정을 깨닫지 못하여 떠오르는 의문들을 미뤄놓고 쌓아놓다, 여느 때처럼 멍하니 여러가지 생각들을 띄워놓으며 그것들을 정리했다.

    이유를 붙이고, 변명을 붙이려 여러 단어들을 붙여가며 닮은 것들을 나열해보았다. 내가 이것들을 어떤 감정이라고 정의해도 되는 것인지 솔직히 확신하기 어려웠지만, 만약 나에게 그 감정이 있다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하나로 그것들을 변명해나갔다.

고록3.png

네 모든 것들이,​

미치겠다.png

네가 노래했으면 해.

네 노래를 좋아하니까.

​노래하는 네 모습을 좋아하니까.

네가 즐거웠으면 해.

네가 주는 즐거움을 좋아하니까.

네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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